
✽남기엽 변호사가 책을 읽고, 호텔산업의 독자는 남기엽 변호사와 함께 책을 읽습니다. 사람과 접촉하고 상대를 읽어 내 마음을 비우게 하는 호텔산업에서 자아를 채우는 일은 중요합니다. 육체와 두뇌, 나아가 감정까지 저당잡히는 서비스업계에서 포기될 수 없는 책을 소개하고, 함께 읽어 나갈 것입니다.
알고리즘이 죽인 우연
“현재는 실체 없는 감각의 총합이며, 미래는 희망이라는 믿음 외에 실체가 없고, 과거는 그 실체 없는 현재의 기억일 뿐이다.” - 조나단 선즈
이 정의가 허무하게 들린다면 당신이 틀린 것만은 아니다. 우리 곳곳에 ‘우연’은 제거됐기 때문이다. 파스퇴르는 “우연한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온다.”고 했지만 크리스틴 로젠은 <경험의 멸종에서 이렇게 반박한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우연을 만날 준비조차 하지 않는다.”라고.
알고리즘과 맞춤형 광고, 내비게이션과 일정표가 우리의 하루를 미리 설계해 놓았기 때문이다. 구글맵은 우리에게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하고, 넷플릭스는 우리가 좋아할 영화를 추천하며, 배달앱은 우리의 취향을 학습해 메뉴를 제안한다.
구글맵이 없던 시절, 길을 잃는 것은 불안을 동반했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 말을 걸 명분이었고, 심지어 그 명분은 내성적인 사람조차 용기 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길을 묻는 행위조차 의심스러운 일이 돼버린 시대다. 스마트폰이 있는데 왜 사람에게 길을 묻냐는 식으로. 길을 잃어야만 발견할 수 있는 골목의 작은 서점은 그렇게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고 실제로 사라지고 있다.
실패가 만든 기적들
과학사에서 우연은 늘 결정적이었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1928년 여름휴가에서 돌아와 지저분한 실험실을 정리하던 중 발견한 페니실린은 수억 명의 생명을 구했다. 만약 그가 완벽주의자여서 실험실을 깨끗이 정리하고 휴가를 떠났다면? 곰팡이가 포도상구균을 죽이는 모습을 관찰할 기회는 영영 사라졌을 것이다. 찰스 굿이어는 고무를 불에 떨어뜨리는 실수를 통해 가황법을 발견했다. 심지어 3M의 포스트잇조차도 ‘접착력이 형편없이 약한 풀’을 만들어 버린 실패에서 시작됐다. 로이 플런켓이 냉매 실험 중 우연히 발견한 테플론, 퍼시 스펜서가 레이더 실험 중 주머니 속 초콜릿이 녹는 것을 보고 개발한 전자레인지, 심지어 코카콜라조차 두통약을 만들려던 약사, 존 펨버턴의 실패작이었다.
그들의 발견에는 지금과 같은 빅데이터도, 시장조사 보고서도, KPI(핵심 성과 지표)도 없었다. 그저 비집고 들어온 우연을 놓치지 않는 감각과, 실패를 휴지통에 버리지 않는 끈기만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행동양식은 너무 정교하게 설계돼 있다. 낯선 길을 걸을 일은 없고, 식당은 별점 순으로만 선택하며, 대화 주제는 미리 예측 가능한 것들 뿐이다. ‘맛없다’로 도배된 별점 1개짜리 식당에 기막힌 우연성을 기대하며 기념일 예약을 거는 정신나간 사람은 없다. 우연은 불필요한 변수로 취급되고, 실패는 곧바로 수정·삭제된다.
이렇게 ‘실패의 발효’가 사라진 사회에서, 우리는 파스퇴르의 경고를 비웃듯 우연이 아니라 ‘사전 설계된 이벤트’만을 소비한다.
실종되는 우연, 관리되는 삶
우리는 점점 우연을 잃어간다. 광고는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있던 욕망을 확인시킨다. 학교와 직장은 어떨까. 성적과 성과가 ‘우연한 가능성’을 말살시키고, 인간관계마저 예측가능한 네트워크로 축소된다. 강남 어느 아파트단지가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그 안의 구성원으로만 결혼정보 네트워크를 만든다. 제본공 견습생으로 일하다 우연히 물리학 책을 읽고 전자기학의 기초를 세운 마이클 패러데이는 오늘날 어렵다. 모든 것은 효율과 성과의 이름으로 관리되고, 불확실성은 제거 대상이 된다. 그러나 바로 그 불확실성이야말로 인간을 살아 있게 만드는 숨결이다.
우연을 잃는다는 것은 삶에서 ‘숨쉴 틈’을 잃는 일이다. 우리의 삶이 AI에 따라 매끈하고 예측 가능하게만 흘러갈 때, 더 이상 낯선 파편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 순간 삶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계획된 시뮬레이션이 된다. 내가 주체적 자아가 돼 삶의 선형을 능동적으로 그리는 줄 알았는데.
<우연은 얼마나 내 삶을 지배하는가(플로리안 아이그너, 2018)가 지적하듯, 복권에 당첨될 확률과 내가 태어날 확률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부모가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만나거나, 피임약이 우연히 더 강하게 작용했다면, ‘나’라는 존재는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책에 따르면, 인생을 "내가 이뤄냈다"고 말하는 건 사실상 기만에 가깝다.
이렇듯 우연은 불편하고 때로는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것 없이는 자유도 없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사실 실패가 아니라, 실패조차 허락하지 않는 완벽히 통제된 삶일 것이다.

유니티 슬롯 머신, 조금은 우연의 성역
그래서일까. 나는 유니티 슬롯 머신에서 종종 잊었던 감각을 되찾는다. 유니티 슬롯 머신이 주는 최소한의 우연성 때문이다. 적어도 이 지면에 실리는 브랜드가 붙어 있는 유니티 슬롯 머신 공간은, 그곳에 발을 들이기 전까지 앞일을 모른다. 그 방의 창이 진짜 바다를 향하는지, 바람이 커튼을 어떻게 흔드는지, 에어컨이 중앙냉방인지, 옆 방 소음이 괴롭지는 않은지. 누군가는 샤워기 수압마저 중요시하는데 그걸 홍보하거나 설명해 주는 유니티 슬롯 머신은 내 기억엔 없다.
웹사이트 속 사진은 소개팅 프로필과 같아서, 최상층 ‘오션뷰’ 사진 한 장만 믿고 갔다간 주차장 뷰와 함께 아침을 맞게 된다. 그리고 그런 뜻밖의 불만조차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다.
유니티 슬롯 머신은, 우리가 계획하지 않은 만족과 불만을 동시에 품은 공간이다. 룸서비스로 시킨 우동이 예상 외로 맛나거나, 로비에서 만난 누군가가 내 하루를 완벽하게 만드는 경험. 창문 틈새로 스며든 빛에 관해 괜히 글을 쓰게 되는 것. 이 모든 것은 알고리즘의 예측이 닿지 않는 곳에서만 발생한다. 모든 산해진미를 맛볼 수 있는 세계 재벌도, 세상의 모든 유니티 슬롯 머신을 경험할 수는 없다. 시간이, 체력이, 그리고 인생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유니티 슬롯 머신의 우연성은 돈만으로 소유되지 않기에 적당히 유한한 자원과 열정, 그리고 유니티 슬롯 머신을 향한 애정이 있다면 우리는 그 우연의 순간을 노릴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유니티 슬롯 머신은 ‘별점’만으로 단순화되기에는 너무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공간이다. 결국, 유니티 슬롯 머신 안에서의 경험은 우연이 제거된 사회 속에서 예측불가능을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우리가 유니티 슬롯 머신에서 진짜 찾는 것은 편안한 잠자리 뿐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의 경험이다.
우연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당신이 처음 간 유니티 슬롯 머신 로비에 발을 내딛는 그 순간부터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