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높이 올라가려는 인간의 욕망에는 두 가지 상반된 동기가 공존한다. 하나는 과거를 딛고 미래를 향해 치솟는 진보적 욕망이고, 다른 하나는 미지를 탐하는 초월적 욕망이다. 전자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상하이가 보여준 자본주의적 상승이라면, 후자는 오일 달러로 사막에 기적을 건설한 두바이의 계급적 야망이다. 이 두 욕망을 각각 완벽하게 건축화한 공간이 있다.

이번 호에서 소개할 중국 상하이의 ‘파크 하얏트 상하이(Park Hyatt Shanghai)’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 알 아랍(Burj Al Arab)’이 그 공간이다.
하늘을 향한 욕망, 사막과 동방 사이
‘마천루(摩天樓)’라는 한자어는 단순히 ‘하늘을 마찰하는 건물’이 아니라, 인간이 하늘을 침범하려는 오만함과 그 오만함을 정당화하는 근대성의 코드 그 자체다. 1885년 시카고88 슬롯 최초의 철골 구조 고층 건물이 등장한 이후, 마천루는 자본주의 문명의 남근적 상징이자 도시의 권력을 가시화하는 장치였다. 하지만 21세기 아시아와 중동의 마천루는 서구와 다른 문법으로 하늘을 점령했다. 그것은 식민지배의 수치를 씻고 경제적 주권을 과시하는 선언(상하이)이었다. 동시에 서구 모더니즘을 모방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각인(두바이)하려는 이중적 욕망의 산물이었다.

사막의 궁전도서관, 부르즈 알 아랍
두바이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도시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은 진주 채취와 어업으로 연명하는 작은 항구였다. 사막과 바다 사이, 인간이 살기에 가장 척박한 땅. 하지만 1966년 석유가 발견되고, 1971년 아랍에미리트가 건국되면서 두바이는 물리 법칙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부르즈 알 아랍은 역학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두바이의 상징이다. 육지에서 280m 떨어진 바다에 인공섬을 만들고, 그 위에 범선 모양의 건축물을 세운 이 호텔은 발상 자체가 자연에 대한 선전포고다.
건축가 톰 라이트는 이 건물을 아랍 전통 범선 다우(Dhow)의 형태로 설계했다지만 실제로 이 건물을 보면 범선이 아닌 칼날이 보인다. 사막의 뜨거운 바람에 맞서는 흰색 칼날. 테플론으로 코팅된 유리섬유 직물로 만든 외벽은 햇빛을 받으면 눈부시게 빛나고, 밤이 되면 LED 조명으로 색깔을 바꾼다.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지배하려 하는 듯.

로비에 들어서면, 압도당하지 않을 재간이 없다. 촌스러울 정도로 큰 롤렉스 벽시계를 지나 180m 높이의 아트리움에 다다르면 그 웅장함과 작위성에 한 번 놀라야 한다. 금박으로 장식된 기둥들, 이탈리아산 대리석 바닥,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샹들리에. 모든 것이 과잉이고, 그 과잉이야말로 마치 이런 메시지를 함축하는 듯하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가졌다. 우리는 보여줄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이론가 로버트 벤추리의 “Less is bore(덜한 것은 지루하다).”라는 말이 떠오르는데, 부르즈 알 아랍은 이 명제를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객실은 ‘스위트’만 있다. 디럭스룸, 스탠더드룸88 슬롯 잘 사람은 오지 말라는 거다. 가장 작은 방도 170㎡이고, 로얄 스위트는 780㎡다. 모든 객실이 2층 구조인 메조네트 형식이고, 아래층은 거실, 위층은 침실이다. 거실 천장 높이는 무려 7m다. 이 공간88 슬롯 책을 읽으려면, 먼저 당신은 이 과잉과 화해해야 한다. 금박 벽지, 벨벳 소파, 에르메스 어메니티. 특히 에르메스 어메니티는 샴푸, 컨디셔너, 바디샤워, 로션은 물론 향수까지 샘플이 아닌 시판되는 사이즈로 제공된다. 모든 것이 당신에게 “휴식하라, 즐기라, 소비하라.”고 속삭인다. 하지만 진정한 독서는 소비의 반대편에 있다. 그래서 이곳88 슬롯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 공간의 본질에 저항하는 행위가 된다.

창밖으로 보이는 아라비아만은 버킹햄블루 색이다. 너무 맑고 너무 깨끗해서 비현실적이다. 이 바다는 자연이 아니라 관리되는 자연, 통제되는 자연이다. 이 통제성은 수면 아래88 슬롯 식사하는 레스토랑인 ‘알 마하라(Al Mahara)’88 슬롯 극에 이른다. ‘알 마하라’에 들어가는 순간, 지배된 바다와 해양생물을 곁에 두고 식사한다. 물속을 유영하는 생명들은 관람의 대상이 아니라 시간의 단위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고, 목적을 드러내지 않으며, 다만 정해진 궤도를 반복한다. 그 반복이 주는 안정감 앞88 슬롯 인간의 식사는 잠시 속도를 잃는다. 실외와 실내 수영장88 슬롯도 과잉은 계속된다. 딱 하나 갸우뚱한 것은 가격답지 않은 직원들의 캐주얼함이지만 글로벌 5대 체인이 아님을 고려할 때 수긍할 만하다.

이곳에서 읽어야 할 책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다. 서구가 동양을 어떻게 타자화하고 대상화했는지 분석한 이 책은, 역설적으로 부르즈 알 아랍에서 읽을 때 가장 강렬하다. 왜냐하면 이 호텔 자체가 오리엔탈리즘의 자기실현이기 때문이다. 서구인들이 상상한 ‘천일야화의 아라비아’를 아랍인들이 스스로 재현한 것. 금박과 대리석과 크리스털로 치장한 이 공간은, 오리엔탈리즘을 전복하지 않고 내면화한다.

혹은 마이크 데이비스의 『빈민가 행성』을 읽어도 좋다. 이 책은 전 세계 도시의 극단적 불평등을 고발한다. 부르즈 알 아랍의 로얄 스위트는 하룻밤에 2만 4000달러다. 같은 시간, 두바이 외곽 노동자 캠프에서는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섭씨 50도의 컨테이너에서 잠을 잔다. 이 호텔을 건설한 사람들도 그들이다. 당신이 없는 사이 이탈리안 버틀러가 거품을 낸 황금 욕조에 몸을 담그고 샴페인을 마시는 동안, 불과 5km 떨어진 곳에서는 누군가 변기도 없는 방에서 살고 있다. 이 간극이 불편하다면 이곳에 오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이 불편함을 직시하면서도 책을 읽을 수 있다면, 당신은 위선을 넘어선 것이다.
동방의 마천루,파크 하얏트 상하이
상하이는 굴욕의 도시였다. 1842년 난징조약 이후 개항된 이곳은 서구 열강의 조계지로 분할됐고, 와이탄의 신고전주의 건축물들은 중국인에게는 제국주의의 상처였다. 하지만 1990년 푸동 개발이 시작되면서 상하이는 굴욕을 권력으로 전환했다. 와이탄의 건물들이 평균 50m 높이로 황푸강 서쪽에 웅크리고 있을 때, 동쪽 푸동에서는 632m의 상하이 타워가 하늘을 찔렀다. 그 바로 옆, 492m 높이의 상하이 세계금융센터 79층부터 93층까지가 파크 하얏트 상하이다.

이 88 슬롯에 들어서는 순간, 당신은 더 이상 지상의 인간이 아니다. 1층에서 귀가 금방 먹먹해지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87층에 올라가 일상의 중력에서 해방되면, 그게 겨우 로비다. 이후 33m 높이의 아트리움이 펼쳐지는데, 이 수직 공간은 중국 전통 서예의 ‘유백(留白)’ 개념을 3차원으로 구현한 듯하다. 비어있음으로써 가득 찬, 침묵으로써 웅변하는 공간.

객실 창문은 바닥88 슬롯 천장까지 이어지는 전면 유리다. 동방명주를 필두로 상하이의 2400만 인구가 발산하는 빛의 입자들이 밤이 되면 당신의 방으로 흘러들어온다. 황푸강은 이 높이88 슬롯 보면 더 이상 강이 아니라 빛나는 실핏줄이고, 와이탄의 건물들은 박제된 역사의 모형처럼 작아 보인다. 창가에 놓인 티크우드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면, 활자가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중력이 희박한 이곳88 슬롯는 문장마저 가벼워진다.
조식당은 91층에 있다. 여기에서 오믈렛을 먹으며 창밖을 보면, 상하이라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텍스트처럼 읽힌다. 푸동의 초고층 빌딩들은 자본주의의 수사학이고, 외곽의 공단 지대는 노동의 문법이며, 그 너머 보이지 않는 농촌은 침묵당한 각주다.

85층의 수영장은 30m 길이로, 한쪽 벽이 전면 유리창이다. 수영하면서 구름을 본다는 것은 초현실적 경험이다. 물속에 잠겼다가 수면 위로 고개를 들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하늘이라니! 마치 카프카의 『변신』88 슬롯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가 돼 천장을 기어다니며 세상을 전혀 다른 각도88 슬롯 보게 됐듯이, 당신은 이 수영장88 슬롯 인간이기를 잠시 멈추고 조류가 되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풀 사이드는 수영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조망과 안락한 소파를 배치해놓아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읽지 않을 수 없다.

파크 하얏트 프로퍼티에는 드문 클럽라운지가 이 곳에 있다. 바로 ‘살롱’이다. 이 곳에는 손님보다 직원들이 더 많다. 샴페인의 라인업이나 과일의 싱그러움이 예사롭지 않다. 이곳에서 읽어야 할 책은 가볍지 않아야 한다. J.G. 밸러드의 『하이 라이즈(High Rise)』를 통해 고층 건물에 갇힌 주민들이 계급 전쟁을 벌이는 문명과 인간본성 붕괴의 디스토피아를 읽으면, 픽션이 리얼리티가 되는 전율을 느낄 것이다. 상하이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상하이 출신 여성 왕치아오가 상하이의 격변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삶을 그린 왕안이의 『장한가』를 권한다. 더 나아가 현대 상하이를 이해하려면 저우웨이후이의 『상하이 베이비』 같은 포스트모던 소설도 좋다. 1990년대생 여성 작가가 그린 상하이는 섹스, 마약, 외국인, 그리고 돈으로 점철된 도시다. 이 소설은 중국에서 금서가 됐지만, 바로 그 금서 지정이야말로 이 도시의 본질을 증명한다. 공식 담론과 실제 삶 사이의 괴리, 공산당의 수사와 자본주의의 현실 사이의 간극. 파크 하얏트 상하이는 그 간극의 정점에 서 있다.

높은 곳은 사유의 조건을 만든다.
왜 우리는 높은 곳88 슬롯 책을 읽는가. 단순히 전망이 좋아서가 아니다. 높이는 관점을 바꾸기 때문이다. 지상88 슬롯 당신은 사건의 당사자다. 하지만 300m 상공88 슬롯 당신은 사건의 관찰자가 된다. 이 전환이야말로 철학의 시작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높이 올라갈수록 당신은 현실에서 멀어진다. 파크 하얏트 상하이 87층에서 내려다보는 상하이는 실제 상하이가 아니라 추상화된 상하이다. 교통 체증도, 대기 오염도, 노숙자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깨끗하고 질서정연하다. 이것은 권력자의 시선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88 슬롯 거리가 어떻게 윤리적 마비를 만드는지 분석했다. 나치 장교들은 유대인을 직접 죽이지 않았다. 그들은 서류에 서명했고, 기차 시간표를 작성했다.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학살은 가능했다. 우리가 빠르게 택배 배송을 받고, 현대 인프라를 이용하는 이 와중에도 노동자들은 스러져간다. 그럼에도 우리는 편안하다. 직접 책임은 없고, 그저 중대재해처벌법 정도 지지하며 관조하는 것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구름 위의 세계, 그리고 우리가 놓치는 것들
우리는 마천루에서 ‘도시를 내려다본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도시가 숨긴 것을 비로소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혹은 반대로, 도시가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이야말로 저렇게 높이 올라갔을 때가 아닐까. 파크 하얏트 상하이의 창가에서든, 부르즈 알 아랍의 인공섬 테라스에서든, 결국 우리가 마주치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태도다. 쉬는 법이 아니라, 바라보는 법. 저 아래에서 스러지고 또 생겨나는 불빛들 하나하나가, 내가 그토록 열심히 살고자 했던 삶이었다는 사실. 그만큼 사소했지만, 그럼에도 모여 하나의 빛의 군집을 이뤄 마천루를 비추고 있다는 것.
우리는 그 불빛 하나가 되기 위해 애써 왔고, 또 그 불빛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루를 견뎌 왔다는 것을.
마천루 위에 있든, 지하 어딘가에 있든, 혹은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당신의 그 공간 어딘가이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