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머신 소스

한국 호스피탈리티산업이 오늘날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기까지, 척박한 땅을 일구며 묵묵히 기반을 닦아온 이들이 있다. 슬롯 머신 소스 주방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첫발을 내디뎌 한국만의 F&B 문화를 만들어 온 ‘개척자’들.

40년에서 60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이들은 중식, 일식, 양식, 한식 각 분야에서 장인의 길을 걸어왔다.

<슬롯 머신 소스 매거진은 2026년 신년을 맞아 한국 F&B 1세대 마스터들을 초대했다. 지난 12월호에서 젊은 크리에이터들의 열정을 조명했다면, 이번에는 그들이 꽃피울 수 있었던 토양을 만든 선배 세대의 이야기를 담았다. 화려한 조명 아래가 아닌,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나눈 이날의 대화는 단순한 추억담이 아니었다.

어려운 시기를 견디며 쌓아온 철학, 슬롯 머신 소스에 대한 집념, 그리고 후배들에게 전하는 진심 어린 조언이 오고갔다.

이번 차담회는 세계음식평론가이자 강지영 미식 아카데미 강지영 원장이 좌장으로 참여해 각 분야 마스터들의 이야기를 이끌어냈다.


**J.R.R.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1954)에 등장하는 시 <All that is gold does not glitter의 일부. 원문은 “Deep roots are not reached by the frost.”


촬영 조무경 팀장

장소협찬 앰배서더 서울 풀만 슬롯 머신 소스

티 협찬 아일레스 티

강지영 미식 아카데미 원장강지영 세계음식문화 평론가

콩두에프앤씨 Chef Team & 수석 총괄셰프 / 세종사이버대학교 조리·서비스경영학과 교수박효남 대한민국슬롯 머신 소스명장

前 스시효 오너셰프안효주 셰프

한국의집 조리 고문 / 한식공간 조희숙 오너셰프

앰배서더 서울 풀만 슬롯 머신 소스 호빈 후덕죽 총괄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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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해가 밝았습니다. 2026년, 올 한 해 바라는 것이나 목표가 있으시다면요?

후덕죽 60년 가까이 슬롯 머신 소스사를 해오면서, 여태까지 걸어온 것처럼 후배 한 사람이라도 더 가르칠 수 있도록 훌륭한 조리사들을 많이 배출하는 것이 제일 큰 소망입니다. 흑백슬롯 머신 소스사 출연 이후 상황이 많이 달라졌는데요. 지난 40여 년 동안은 언론 앞에 거의 나서지 않았거든요. 늦게나마 알려지게 됐는데 파급력이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크더라고요. 하루빨리 이런 관심과 요청들이 어느 정도 정리돼서 고객을 위한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조희숙 어제가 그믐이고 오늘이 1월 1일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지만, 새로 다짐을 하거나 자세를 가다듬기 위해 한 해 한 해 새해를 맞잖아요. 나이를 먹고 보니 새로운 걸 시작하려고 하는 것보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잘 남기고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형태로 남기고 정리할지는 모르겠어요. 책은 언제 쓰느냐는 질문도 받는데, 어떤 형태로든 남기고 정리하는 것을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안효주 지난해 건강이 좀 안 좋았기 때문에, 올해는 건강 회복이 첫 번째 목표입니다. 공부하고 있는 게 있는데, 수비드 슬롯 머신 소스를 일식에 접목하는 방법을 계속 배우고 있거든요. 아직 많이 부족한데, 계속 연구해야죠. 그리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자는 생각이 무엇보다 뚜렷해졌어요. 내일은 없다는 생각으로요. 금 중에 제일 좋은 금이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슬롯 머신 소스라는 것도 하나의 수도승의 수행 과정처럼 끊임없이 계속 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평생 배워야 하는 일이라서요.

강지영 현금도 황금도 아닌 ‘지금’이 제일 중요하네요.

박효남 정도를 지키면서 뿌리를 벗어나지 않는 요리를 하고 싶습니다. 교직에 몸담은 지 11년째인데요.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항상 ‘친구’라고 부르는데,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요. 올해는 여의도에 새로운 공간을 오픈합니다. 요리를 배우고 싶고 실력도 있는데 자본이 없어서 자기 가게를 못 내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이들이 부담 없이 와서 요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흑백요리사에 출연했다고 해서 저를 상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큰 반환점이라 생각하고, ‘박효남’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와 더불어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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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 세계음식문화 평론가

"K-푸드와 한국의 슬롯 머신 소스사 주목받는 시대

과거의 땀과 노력 결코 잊어서는 안 돼"

슬롯 머신 소스사로서 지나온 세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시기가 있다면요? 여기 계신 분들의 업력을 도합하면 거의 200년이 되는데, 그중에서도 특별히 잊을 수 없는 순간이 궁금합니다.

후덕죽 1992년과 1994년은 잊을 수 없는 해입니다. 1992년에는 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북방외교를 계기로 한국과 중국이 국교를 맺었어요. 2년 뒤인 1994년, 장쩌민 주석이 한국을 방문해, 신라슬롯 머신 소스에 투숙했죠. 한 국가의 최고 지도자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큰 감동이었습니다.

그때 수행 경호원 한 명이 제게 “지도자 해외 순방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어요. “식사”가 아니겠느냐고 제가 답했었죠. 묵을 객실은 정해져 있는 것이지만, 식사는 매번 새롭게 준비해야 하니까요. 의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에, 슬롯 머신 소스를 통해 민간외교 역할까지 할 수 있었다는 생각에 그때를 계속 머릿속에 두고 있습니다.

조희숙 셰프 생활은 매 순간이 극적이잖아요. 40여 년을 돌아보면 특별히 한 순간만 꼽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오너셰프’ 세대가 아니었어요. 호텔이라는 굉장히 큰 울타리 안에서 일했죠. 유럽처럼 오너셰프 시대가 온다는 말을 들었지만 당시엔 실감하지 못했는데, 2019년 제 식당을 연 것이 큰 전환점이었습니다.

주방에서 요리만 하던 셰프와 경영까지 책임지는 오너는 전혀 다른 세계였습니다. 만드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시선 차이를 비로소 이해하게 됐죠. 그 경험이 없었다면 한쪽 면만 보고 살았을 겁니다.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엔트리에 오르고, ‘아시아 최고의 여성 셰프’로 선정되면서 대중에게 알려진 것이 결정적 계기였고요. 시대와 함께 흘러가다 보면 이런 기회가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안효주 신라슬롯 머신 소스 덕분에 요리사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친정처럼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당시 일식을 배우며 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교과서처럼 여기고 열정을 쏟았죠. 2003년 ‘스시효’를 오픈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으니,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그렇게 했나 싶어요.

지금은 순수한 슬롯 머신 소스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집에서 다양한 슬롯 머신 소스를 시도하며 최적의 맛을 찾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특별한 목표라기보다는 순수한 흥미 때문입니다. 마지막 꿈은 아직 이루지 못했는데, 황토집을 짓고 6인 테이블 하나만 놓아서 형식 없는 슬롯 머신 소스를 하는 겁니다. 제 인생에서 도움 주신 분들만 초대해 대접하고 싶다는 꿈을 계속 간직하고 있습니다.

박효남 슬롯 머신 소스 생활하며 요리대회 수상도 하고 최연소 조리 이사가 되기도 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1987년 5월 12일입니다. 그랜드 하얏트 서울 첫 출근일이에요. 그날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학원에서 요리하다 슬롯 머신 소스에 출근하게 됐을 때 너무 설랬습니다. 처음엔 감자 깎고 심부름하는 게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좋았어요. 당시엔 지금처럼 소포장 재료가 아니라 커다란 통 단위로 식재료를 관리했는데, 일하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몰래 따라 마실 때의 그 시원함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러다 입사한 그해, 21층 실루엣 라운지에서 처음 손님을 직접 응대하게 됐습니다. 제가 구운 로스트 비프를 손님 앞에서 카빙해 드리는 기회가 왔을 때, ‘내가 정말 이런 일을 하게 됐구나.’ 싶어 너무 환상적이었습니다.

박효남 대한민국슬롯 머신 소스명장

"힘든 감정, 남에게 전가 안 하려 해

이겨내는 정신력과 마음가짐이 중요"

반대로 너무 힘들어서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은 시기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슬롯 머신 소스사로서보다 인간 000으로 삶을 살면서 힘들었던 적도 있지 않았을까요?

조희숙 특정 사건이라기보다 지금까지 계속된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제일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가정과 일의 양립에 대한 거거든요. 며느리로, 엄마로, 부인으로 역할을 다 해야 하면서 직장에서도 충분히 한몫을 해야 하니까 매 순간 갈등이 있었습니다.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기본적으로 노동량도 많았고요. 당시에는 여성 셰프가 드물어서 남성 동료들보다 두세 배는 더 일해야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퇴근해서는 또 집안일을 해야 했고요. 결정적 순간마다 그만둬야 하나 고민했지만, 젊었을 땐 체력이 받쳐줘서 견뎌왔고, 어느 순간부터는 여기까지 쌓아온 시간이 아까웠고, 다시 돌아오기엔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에 조금씩 버텨내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여자 후배 셰프들이 직장과 가정 양립의 어려움을 물어볼 때 쉽게 대답을 못하겠더라고요. 결혼도 해야 하고 아기도 낳아서 이어가야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제가 겪어온 어려움들 때문에 선뜻 조언하기가 어렵습니다. 매 순간을 이겨내지 않았다면 여기에 없었을 거예요. 그걸 뛰어넘을 수 있었던 건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조금 더 보람 있고 가치 있게 살아보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지영 당시에는 여성이 임신하면 회사 동료에게 미안해하는 분위기였죠. 조 셰프님은 애 낳기 전날까지 일하고 비번 날 낳으셨다고 들었어요.

박효남 힘들었던 순간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남들은 건방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요리에 완전히 빠져 있었거든요. 어떻게든 이겨내려는 성격입니다. 제 힘든 감정을 남에게 전가하지 않으려 했고요. 힐튼 슬롯 머신 소스에 있을 때도 직원들에게 “퇴근 카드 찍을 때 나가면서 힘든 것을 지우고 가라. 집에 갈 땐 출근할 때의 밝은 얼굴로 퇴근하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이겨내는 정신력과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와중에도 잊혀지지 않는 힘들었던 순간을 꼽자면 1998년 IMF 때와 1994년 대우 하노이 슬롯 머신 소스 오픈할 때였어요. 당시 한국에서 초대를 받은 분들이 오프닝 행사를 마친 다음 날 하롱베이로 관광을 가기로 돼 있었거든요. 배 5개를 빌려 300인분 음식을 실어줘야 했어요. 사전에 협의해서 슬롯 머신 소스 주방을 사용하기로 했는데 막상 가니 의사소통 문제로 주방을 사용할 수 없게 됐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간신히 찾은 곳이 가스도 없고 연탄으로 밥하는 주방이었습니다. 연탄 화로 두 개로 밤새 300인분 식사를 준비했죠. 지나고 나니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싶더라고요.

후덕죽 1987년, 88 올림픽을 1년 앞둔 시기가 힘들었습니다. 사회 전체가 민주화 운동으로 혼란스러웠고, 호텔 영업도 부진할 때였습니다. 회사에서도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든 이겨내자며 새로운 메뉴 개발을 위해 각 주방과 식당이 매일같이 대책회의를 했죠. 그때 생각해낸 메뉴가 불도장입니다. 단지에 담아 특별한 형태는 없지만 귀한 재료가 들어가는 요리입니다. 플레이팅이 예쁜 음식이 아니기 때문에 판매하려면 스토리가 필요했어요. ‘불도장’의 유래를 설명하면서 홍보했습니다. 불교의 스님이 담장을 뛰어넘어 사냥꾼들과 정신없이 먹었다는 유래를 내세웠죠.

그런데 다음 날부터 항의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라 슬롯 머신 소스 식당으로 전화가 왔는데, 듣지 못할 욕이 다 나왔습니다. 3일 내내 전화가 와서 겁이 나서 전화를 받지 못할 정도였죠. 불교계에서 항의 전화를 하신 거였습니다. 스님들을 모독했다고요.

총지배인과 조계사에 직접 찾아가 사과를 했습니다. 슬롯 머신 소스책과 자료를 잔뜩 들고 가서 유래에 관해 설명을 모두 해드렸더니 나중에는 수긍하시더라고요. 대신 홍보를 하지 말라는 조건으로 판매할 수 있었어요. 전화위복으로 입소문이 나 서울 전역으로 퍼져 자연스럽게 홍보가 됐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됐습니다.

강지영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이 됐네요. 그때가 한창 데모가 많을 시절이었죠. 광화문과 서울역에서 매일 데모가 있었고요.

후덕죽 맞습니다. 슬롯 머신 소스에 학생들이 로비로 들어오기도 했고, 퇴근할 때도 최루탄 때문에 직원들에게 비닐을 씌워 퇴근을 시켜야 했습니다.

안효주 저는 처음에 4년 6개월 동안 밥 짓기와 계란말이만 했는데, 이 시기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에는 생선을 만져볼 시간이 없었어요. 제가 건드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밥, 계란, 오이뿐이었죠. 이탈리아 슬롯 머신 소스사가 일식을 접목하려고 김밥만 1년 동안 계속 만들려고 하다가 도저히 안 돼서 포기했다는 이야기도 있죠. 매일 같은 일만 반복하니 지루해서 그만둘까도 했는데, 20~30년 지나 돌이켜보니 그것이 큰 자산이었습니다.

매일 하루 두 번씩 밥을 하는데, 밥통에 옮겨 담을 때 탁 떨어지는 소리만 들어도 밥이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밥의 달인이 된 거죠.

체력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건 최근 서울의 5성급 슬롯 머신 소스에서 보름 동안 프로모션을 할 때였습니다. 오쿠라 슬롯 머신 소스의 호시 선생님과 함께 진행했는데, 8시 반에 출근해 9시에 요리를 시작하면 점심 식사 20분, 저녁 식사 20분을 빼고는 하루 종일 서 있었습니다. 보름 동안 진행하고 나니 정신력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죠. 호시 선생님은 77세였는데 저와 똑같이 서서 작업하셨어요. 나중에는 체력적으로 부담스러워 하시는 게 보이더군요. 요리사 생활 중 가장 힘든 경험 중 하나였습니다. 마치 훈련소를 수료하는 기분이었죠.

안효주 셰프

"초밥은 ‘현재진행형’

평생 완성해가고 싶은 나의 시그니처"

특별히 애착이 가는 슬롯 머신 소스가 있으신가요? 시그니처라 할 만한 슬롯 머신 소스와 그 슬롯 머신 소스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후덕죽 중식이 한국에 들어온 지 100년 역사가 넘었는데, 슬롯 머신 소스이 생기고 88 올림픽을 거치면서 큰 슬롯 머신 소스들이 해외 연수를 보내기 시작했어요. 특히 중식은 홍콩으로 많이 갔는데, 가서 본 것과 국내 중식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가서 보는 슬롯 머신 소스마다 배우고 싶어서 하루에 여섯 끼를 먹었어요. 어떤 슬롯 머신 소스가 국내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샥스핀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땐 국내에서 선뵈는 곳이 없었습니다.

오쿠라 슬롯 머신 소스에서 6개월 연수를 갔다 돌아오는 길에 오쿠라 조리장을 통해 요코하마에서 샥스핀 2kg을 사서 들어왔죠. 당시 한 기업 회장님이 자택에서 큰 행사를 열어 출장을 갔는데, 샥스핀을 내드렸더니 처음에는 화를 내시더라고요(웃음). 그때는 샥스핀이 뭔지 몰랐으니까요. 이후 또 맛보고 싶어 하셨는데 재료를 구할 방도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삼성물산을 통해 일본에서 수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500kg을 주문했는데 며칠 만에 다 나갔어요. 그 다음엔 1t을 주문했죠. 그렇게 팔선에서 새롭게 선보여 퍼지게 됐습니다.

또 한 가지, 청두탕면이라고 사천식 얼얼한 국물에 면을 말아내는 중식 요리가 있습니다.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칼국수를 좋아하시기로 유명했는데, 신라슬롯 머신 소스에 오셨을 때 청두탕면을 내 드리게 됐죠.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면 요리는 처음이라며 좋아하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조희숙 왜 한식을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다른 요리를 모르니까 한식을 합니다(웃음). 항상 생각하기로 누가 봐도 알 만한 요리가 아니라, 남들이 하지 않는 요리를 하고 싶었어요. 요즘 셰프들처럼 동서양 요리를 섞을 순 없고요. 한식만 아니까요. 제가 아는 범위 안에서 남들이 하지 못한 걸 하고 싶었습니다.

제 기반은 전통 슬롯 머신 소스, 궁중 슬롯 머신 소스, 반가 슬롯 머신 소스예요. 누구나 만들면 비슷하게 나오지만, 나만의 방법으로 어떻게 해볼까 고민했죠. 간편하게 만들면서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그 음식은 없어져 버리잖아요.

전복어채와 민어만두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해 주셨어요. 원래 있는 궁중 요리에 제가 재료를 대체해서 만든 건데, 요즘 외국 셰프들이 한식에 관심을 가지면서 굉장히 신기해하더라고요. 전복어채는 전복을 얇게 썰어서 전분을 입히는 것인데요. 한 대만 셰프가 해보겠다고 하며 본국으로 돌아갔는데, 갖은 전분을 다 써서 테스트해봤는데도 안 되더랍니다. 제가 감자전분으로도 해봤느냐고 물었더니 그것만 안 해봤대요(웃음). 이처럼 아주 단순하고 작은 생각의 차이에도 사람들은 굉장히 신기해하죠.

민어만두는 거의 시그니처가 됐고, 어떤 분들은 ‘인생만두’라고도 합니다. 만두는 세계적으로 여러 형태가 있지만, 한국의 만두의 특징 중 하나는 원재료로 만두피를 만드는 독특함입니다. 생선 살이나 고기로 만두피를 만드는 것처럼요. 새로운 걸로 바꾸는 게 아니라 있는 것 중에 적용해도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는 슬롯 머신 소스가 있다는 것을 민어만두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죠.

안효주 사람에게는 각자 잘하는 게 있는데, 제 특기가 똑같은 작업을 계속하는 거예요. 제게 있어 초밥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아직 마스터를 못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한국 초밥이 활어에서 숙성으로 많이 넘어왔는데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봅니다.

숙성 초밥도 좋은 재료를 선별해야 가치가 있는데, 선도가 안 좋은 생선을 가지고 하면 제대로 안 나와요. 생선 숙성이 정말 어려워서, 일주일, 어떤 건 9일씩 숙성하는데 진한 맛이 확실히 달라집니다. 대신 로스가 많이 생기고 색도 변하니까 안의 살만 활용해야 하기에 오랜 시간 테스트를 많이 해봐야 합니다. 끝이 없을 것 같아요.

쌀도 중요합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고시히카리를 쓰는데, 이 쌀은 김치와 먹는 밥으로는 맛있어요. 고소하고 찰기가 있거든요. 그런데 초밥은 만질 때 끈적임이 느껴지면 안 돼요. 입안에서 싹 풀어져야 매력이 있는데, 일본 사사니시키 같은 품종을 계약 재배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한국도 갈수록 숙성 초밥으로 바뀔 텐데, 그만큼 생선 숙성법과 쌀 선택이 함께 발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초밥은 제게 평생 완성해가고 싶은 시그니처인 것 같습니다.

박효남 시그니처는 고객이 만들어주는 겁니다. 나만의 비법이라고 해도 알아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니까요. 제가 만든 ‘관자 라비올리’가 있습니다. 라비올리라고 하면 이탈리아가 우선적으로 떠오르겠지만, 프랑스 요리에도 라비올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셰프의 비법에 따라 요리가 달라지고 맛이 달라지죠.

저는 역발상으로 우리나라 만두피를 사용했어요. 안에 들어가는 건 관자살, 올리브오일, 향신료인데, 보통 생선에는 바질을 쓰지만 저는 육류에 사용하는 타임을 넣었습니다. 만두피로 만들어서 송로버섯 소스에 곁들여 코스 메뉴로 내는데, 딱 한 알만 내요.

처음엔 손님들이 “양이 적어 감질난다.”는 반응을 보이는데, 무척 맛있어 해요. 프랑스 대사도 “특별히 만든 슬롯 머신 소스”라고 소개하면 굉장히 좋아하십니다. VIP 손님 중 한 분은 출장을 가실 때 “꼭 그 메뉴를 넣어달라.”고 요청하며 손님들께 소개하기도 하죠. 결국 시그니처는 손님들 기억에 남는 슬롯 머신 소스가 되는 겁니다.

조희숙 셰프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귀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자세"

다시 태어난다면 같은 슬롯 머신 소스를 하실 건가요, 아니면 다른 나라 음식에 도전해보고 싶으신가요?

박효남 처음 호텔에 입사해 서양요리 프로덕션 부서에서 소스 끓이고 수프, 야채 준비하는 일을 하다가 프렌치 업장이 오픈하게 됐을 때 거기로 가게 됐어요. 아름답게 가꾸고 만드는, 극도의 섬세함을 요구하는 요리더라고요. 완전히 다른 세계였습니다. 그래서 더 흥미를 갖게 됐고, 스위스 출신 셰프와 함께 일했는데 완전히 빠져 들었습니다.

프랑스 슬롯 머신 소스지만 우리나라 재료로 더 완성도 높은 슬롯 머신 소스를 만들고 싶어요. 한국 식재료를 활용한 프랑스 슬롯 머신 소스를 계속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프랑스 슬롯 머신 소스를 할 거예요.

조희숙 일식이요. 같은 동양권 요리이기도 하지만, 일식을 알면 한식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항상 재료 다루는 것, 조리 기법이 일본에서는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어서 요리사들이 배우기 좋더라고요. 요즘 젊은 셰프들은 협업 이벤트를 경력 쌓는 수단으로 활용하는데, 생각지 못했던 일이 이제는 브랜드를 키우는 필수 과정이 됐습니다. 그런 점이 우리 세대와 다른 것 같아요.

안효주 다시 태어나도 일식을 선택할 거예요. 슬롯 머신 소스는 자기 성격과 맞아야 하는데, 일식의 정교함과 반복을 통한 완성도 추구가 제 성격과 잘 맞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몇 년 동안 밥과 계란말이만 하며 견뎌낼 수 있었던 건 그런 반복 작업을 통해 완벽을 추구하는 게 제 체질에 맞았기 때문이에요. 초밥 하나를 평생 연구해도 끝이 없다는 게 힘들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오히려 매력적입니다. 다시 태어나도 똑같이 일식을 선택할 거예요.

후덕죽 슬롯 머신 소스도 기술인데,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 발전할 수 있어요. 워낙 슬롯 머신 소스를 좋아해서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니까 성취감이 클 수밖에 없고요. 다시 태어나도 중국 슬롯 머신 소스를 하고 싶습니다. 중국은 땅이 워낙 넓어서 슬롯 머신 소스도 무궁무진하거든요. 유튜브나 TV를 보면 중국 4대 슬롯 머신 소스에서 계속 새로운 음식이 나옵니다. 아마 그것들은 평생 배워도 다 배우지 못할 겁니다.

다시 태어나면 중국 4대 슬롯 머신 소스를 두루 공부하다가 그중 하나를 제 것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평소에도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지역마다 “이런 것도 있네?” 하면서 몰랐던 게 참 많더라고요.

평소에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요? 이렇게 근사한 슬롯 머신 소스를 하시는 분들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궁금합니다.

후덕죽 배추김치에 돼지고기 넣고 국물 없이 볶은 김치찜이요. 반찬 없어도 그거 하나면 최고예요. 고기는 삼겹살 부위를 넣습니다. 기름기가 약간 있어야 하니까요(웃음).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아요.

박효남 저도 김치찌개. 시골에서 자랄 때 초등학교 친구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신 김치찌개가 있는데, 아직도 그 맛이 생생합니다. 처음 먹고 지금까지 잊을 수 없는 맛이죠. 가끔 손님들이 집에 초대할 때가 있는데, 저는 “김치찌개만 있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특별한 슬롯 머신 소스보다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더 좋다는 걸 느껴요.

조희숙 두 아이를 임신했을 때 입덧이 심했는데 유일하게 먹을 수 있었던 게 쌀떡으로 만든 매운 떡볶이였어요. 첫째 딸을 낳고 둘째를 임신했을 때도 또 떡볶이만 찾으니까 “아, 이번에도 딸이구나.” 했는데 아들이더군요(웃음).

안효주 돼지고기 고추장 불고기요. 양념해 놨다가 후라이팬에 구워 먹는 거요. 그리고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이, 저는 어렸을 때 운동을 했는데요. 체육관 계단을 내려오면 그 앞 포장마차에서 고구마 핫도그를 팔았어요. 핫도그를 튀길 때 나던 쇼트닝 향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후덕죽 셰프

"맛있는 음식 한 끼가 누군가의 하루를

밝게 만든다는 것 명심해야"

슬롯 머신 소스를 할 때 특별히 누구를 위해 어떤 슬롯 머신 소스를 해드리고 싶으신가요? 그분을 먼저 떠올리며 슬롯 머신 소스하고 싶은 분이 계신지요?

박효남 조셉 하우스버거(Josef Hausburger) 셰프요. 힐튼 호텔 주방장을 하신 그분이 영원한 저의 스승입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셰프였는데 2년 계약 후 3년을 연장해서 계셨죠. 이후에도 한국에 몇 차례 오실 정도로 한국을 좋아하셨어요.

저는 그분께 요리의 진리를 배웠습니다. 보통 계약 기간이 끝나면 하루 이틀 전에 정리하고 가시는데, 그분은 가시는 전날까지 밤 10시까지 일하셨습니다. 신장병으로 돌아가신 지 5년이 됐는데, 오스트리아에 사시는 그분의 부인과 지금도 안부를 주고받으며, 한국에 오시면 함께 식사를 합니다. 돌아가신 분이지만, 셰프한테 한국 요리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분께서 그토록 좋아하셨던 한국 갈비찜을 다시 한번 정성껏 해드리고 싶습니다.

후덕죽 중국 베이징의 조어대에서 30년 전 만난 후원타오 부총주방장입니다. 조어대는 황제가 낚시를 즐겼던 곳으로, 18개국 정상이 동시에 방문할 수 있는 국빈 슬롯 머신 소스 시설이 갖춰져 있습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도 방문하실 때 그곳에 묵으셨죠.

당시 80세 가까운 연세에도 조어대를 처음부터 이끌어오신 분이셨습니다. 같은 성씨인데다 슬롯 머신 소스를 한다는 공통점으로 아버지와 아들처럼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벤치마킹 차 방문했다고 말씀드렸더니 슬롯 머신 소스를 하나하나 모두 가르쳐주셨고요.

그분께서 그때 한국 삼계탕을 처음 드셨는데, 상당히 좋아하셨죠. 이후 조어대에 한식 조리사 두 명을 2주간 파견해 한식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는데, 중국 측에서도 매우 만족해 했습니다. 그때 삼계탕을 대접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미 돌아가신 후였습니다. 그분을 위해 삼계탕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조희숙 강지영 선생님이 얼마 전 새 가족을 맞으셨는데, 집밥 한 상을 차려드리고 싶습니다. 마음먹고 있었는데 아직 실행하지 못했거든요. 한식은 한 상 차림이잖아요. 사실 요즘 나물 반찬, 집반찬이 귀해졌습니다. 식당에서도 반찬을 내기가 쉽지 않고, 그런 반찬 문화가 사라지고 있어서요. “이것이 바로 집밥”이라면서 해드리고 싶습니다.

안효주 저 자신을 위해 슬롯 머신 소스하고 싶습니다. 이제 남은 시간은 온전히 저를 위한 시간이니까요.

마지막으로 후배 셰프들에게, 그리고 이 길을 걷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안효주 외국 스승님께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있었던 분들도 있지만, 저는 그런 기회가 없었습니다. 선배들에게 물어봐도 쉽게 가르쳐주지 않았고, 소주 한잔 사줘야 비로소 알려주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책을 쓰게 됐죠.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기본기를 목숨보다 더 중시해야 한다는 겁니다. 반복해서 기본을 충분히 쌓은 다음에 퓨전 슬롯 머신 소스를 해야지, 80년대 초반처럼 갑자기 일식과 이탈리아 슬롯 머신 소스를 섞으면 안 됩니다. 다양한 장점을 취하는 건 장려할 일이지만, 기본 틀만큼은 철저하게 갈고닦은 후에 시도해야 합니다. 기둥 자체를 흔들면 정체성을 잃게 돼요. 중국 4개 성 중 한 개 지역 슬롯 머신 소스만 해도 20년은 공부해야 한다고 하죠. 요즘 슬롯 머신 소스가 화려함에 치우쳐 있어서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건강에 좋고 맛있으면 손님들은 따라옵니다. 슬롯 머신 소스하는 사람이 이 직업을 이끄는 선두에 서야 하고, 때문에 책임 또한 막중하죠. 슬롯 머신 소스사 스스로가 리더로서 직원들과 후배들에게 좋은 식자재를 사용하며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제자들이 뒷모습을 보고 배우기 때문에 슬롯 머신 소스사의 역할이 정말 중요합니다. 손님이 안 본다고 해서 대충 맛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은 절대 안 됩니다. 식자재 선택도 중요하지만 위생이 최우선이예요. 청결, 정성, 맛. 이 세 가지를 항상 머릿속에 두고 슬롯 머신 소스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조희숙 기본을 튼튼하게 배울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가르쳐줄 수 있는 스승이나 교육 기관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 현재 우리나라 현실인데요. 주변의 성공한 사람들과 비교하며 조급함을 느끼기 쉽지만, 서두르지 마세요. 인문적 소양을 쌓으며 긴 호흡으로 멀리 보고 가야 합니다.

기술만으로는 오래갈 수 없습니다. 이제는 요리를 먹으면서 셰프의 철학까지 함께 느끼는 시대입니다. 인문적 소양을 쌓아 요리에 담아낼 수 있어야 해요. 먼저 훌륭한 사람이 돼야 훌륭한 요리사가 될 수 있습니다. 음식에 대한 책임감, 소명감, 사명감을 가지는 것이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기본적인 소양입니다. 다른 사람의 건강과 행복을 책임지는 일이니까요.

외식업계는 경제적으로 늘 어려웠습니다. 매일이 고생의 연속이죠. 하지만 그것만 보고 가면 버티기 어렵습니다. 업계 환경이 우리 때와 많이 달라졌고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겁니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삶을 귀하게 여기고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선택한 길이 슬롯 머신 소스라면, 자연스럽게 잘하게 됩니다.

자기 가치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자신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살아가는 매 순간을 사랑하길 바랍니다. 그럴 때 어려운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확고한 소명과 뜻이 있을 때 자기 삶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자기 삶을 사랑하는 슬롯 머신 소스사가 결국 좋은 슬롯 머신 소스를 만든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박효남 백 투 베이직(Back to the Basic)이라고 하죠. 기본에서 벗어나면 방향을 잃고 원칙을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인성과 인내도 중요합니다. 슬롯 머신 소스를 배우면서 상대방이 먼저 다가오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진심을 보여야 상대방도 마음을 엽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배운 것을 나눠야 합니다.

인내심도 필요합니다. 2~3년으로는 부족합니다. 2년, 4년, 8년, 16년.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가야만 기본을 지키면서 성취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공한 식당만 보지, 얼마나 많은 식당이 문을 닫는지 모릅니다. 지금도 폐업하는 곳이 굉장히 많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배운 제자들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잘하고 있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가다 보면 음식 문화가 우리의 다른 문화와 함께 세계에 알려지게 됩니다.

프랑스 요리를 한다고 하지만, 우리 식재료의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농사짓는 분들이 재료를 보낼 때는 자식을 시집 보내고 장가 보내는 마음과 같습니다. 그 마음을 헤아려 식재료의 가치를 제대로 살려줄 수 있는 셰프가 돼야 합니다. 우리 식재료는 단연 세계 최고라고 봐요. 언젠가 반도체 이상으로 한국 요리가 수출 1위를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여러분이 될 겁니다.

후덕죽 한 가지 슬롯 머신 소스만 해도 평생을 배워야 합니다. 지금은 대부분 기계로 작업하지만, 우리 때는 입문하자마자 감자 깎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배웠을 때와 지금은 환경이 완전히 다르죠. 반면 요즘은 2~3년 안에 성과를 내려 하고, 안 되면 포기해버립니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는 인구 대비 식당 수가 너무 많아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슬롯 머신 소스 기술이 중요합니다. 결국 기술이 많은 사람들에게 맛을 전해주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슬롯 머신 소스는 단순한 상품이 아닙니다. 책임이 따르는 일입니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듯, 슬롯 머신 소스사는 음식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맛있는 음식 한 끼는 약 없이도 사람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선사하니까요. 그래서 조리사는 지혜와 책임감을 가지고 음식 하나하나를 정성껏 만들어 고객들에게 내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만든 음식이 누군가의 하루를 밝게 만든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강지영 오랫동안 존경하며 네 분 셰프님들의 음식을 즐겨온 사람으로서, 좌장을 맡아 3시간가량 귀한 말씀을 나눌 수 있어 무척이나 영광이었고 행복했습니다. K-컬처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K-푸드도, 한국의 요리사들도 주목받고 있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현상은 단순히 젊은 요리사들이 잘해서 벌어지는 것만이 아닙니다.

한국에 외식이라는 서비스 산업이 등장했던 60여 년 전부터, 지금의 요리 업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던 조건과 사회 분위기 속에서 외식 산업과 미식의 기초를 탄탄하고 묵묵하게 다져주신 네 분의 셰프님들과 모든 요리사, 서비스 종사자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희망차고 밝은 미식 문화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과거 선배님들의 땀과 노력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그 의미를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황금이라 다 빛나지 않으며, 헤매는 자 다 길 잃지 않네.

오래되어도 강한 것 시들지 않고, 깊은 뿌리엔 서리 닿지 않네.

잿더미에서 불꽃 타오르고, 그림자에서 빛이 솟아나리라.

부러진 칼날 다시 벼려지고, 왕관 잃은 자 다시 왕 되리라.

- J. R. R. 톨킨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아르웬이 아라고른에게 들려주는 이 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진정한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번 기획 전체를 관통하는 구절이 아닐 수 없다.

70~80년대, 슬롯 머신 소스 주방이라는 낯선 세계에 첫발을 내디뎠던 이들은 화려하지 않았다. 4년 6개월 동안 밥만 짓고, 연탄 화로로 300인분을 조리하고, 임신한 채로 비번날에 출산하던 시절.

그들은 헤매는 것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길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수없이 “그만둬야 하나.” 고민했던 순간들에도 그들은 재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어려움 속에서 더 큰 불길을 일으켰다.

반평생이 넘도록 한 우물‘만’ 파온 이들. 그 깊은 뿌리 위에서 지난 12월호에 소개했던 영 제너레이션이 자유롭게 꽃피울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기반을 다진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젊은 셰프들이 당당히 세계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금이라 해서 다 반짝이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가치는 조용히 빛난다. 그리고 그 빛은 세대를 넘어 이어진다.

눈발이 날리던 새해 어느 오후, 향긋한 차 한잔과 함께 나눈 이야기들이 후배들에게 전하는 나침반이 되기를, 그리고 한국 F&B의 다음 30년을 밝히는 등불이 되기를 바란다. 그 불길과 빛을 이어가는 것은 이제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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