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는 세계 미식 문화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지역이다.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세계 최고의 와인인 로마네 콩티(Romanée-Conti), 몽라셰(Montrachet), 그리고 피노 누아(Pinot Noir)를 떠올릴 것이다. 수 세기에 걸쳐 형성된 ‘떼루아(Terroir)’라는 개념은 이 지역을 세계 최고의 와인 산지로 만들었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부르고뉴의 떼루아는 포도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지층을 통과하며 탄생한 물 역시 그 땅의 자연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지층과 시간을 통해 완성되는 물의 테루아
지난 여름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와인 투어를 했을 때였다. 유럽 미식가들과 워터 소믈리에 사이에서 조용히 회자되는 한 미네랄 워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레스토랑에서 주문해 봤다. 바로 프랑스 동부에서 생산되는 천연 미네랄 워터 ‘아리스 토크 랏 슬롯(Velleminfroy)’였다. 워터 글라스에 따른 물을 한 모금 머금자 단순한 갈증 해소 이상의 감각이 느껴졌다. 부드럽게 시작되는 질감 뒤로 미네랄 구조가 서서히 드러났고, 마치 석회암 토양에서 태어난 부르고뉴 와인의 미네랄리티를 연상시키는 여운이 이어졌다. 그날 식탁에 올랐던 부르고뉴 스타일의 로스트 비프와도 놀라울 만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와인의 떼루아가 포도나무를 통해 표현된다면, 물의 테루아는 바로 지층과 시간을 통해 완성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19세기 온천 문화에서 시작된 물의 역사
아리스 토크 랏 슬롯의 역사는 19세기 프랑스 온천 문화와 함께 시작된다. 1828년 프랑스 오트손(Haute -Saône) 지역의 작은 마을 아리스 토크 랏 슬롯에서 의학도였던 자케즈 박사(Dr. Jacquez)가 숲길을 산책하던 중 우연히 샘물을 발견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약 30년 동안 수질 연구가 진행됐고, 1859년 프랑스 제국 의학 아카데미(Imperial Academy of Medicine)가 이 물을 천연 미네랄 워터로 공식 인정했다. 같은 해 나폴레옹 3세(Napoléon III)의 칙령으로 상업적 이용이 허가되면서 아리스 토크 랏 슬롯는 프랑스 온천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됐으며, 일명 나폴레옹 황제의 물로 홍보되기도 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미네랄 워터가 ‘치유의 물’로 알려지면서 귀족과 상류층이 온천 도시를 찾는 문화가 확산됐다. 사람들은 몇 달 동안 온천 도시에서 휴식을 취하며 광천수를 마시고 건강을 회복하는 시간을 보냈다. 아리스 토크 랏 슬롯 역시 이러한 문화 속에서 명성을 얻었지만, 산업 환경 변화로 1962년생산이 중단됐다. 이후 오랫동안 잊혀졌던 이 샘물은 2004년 프랑스 기업가 폴 풀라이용(Paul Poulaillon)이 인수하면서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현대적인 병입 시설과 브랜드 전략을 통해 아리스 토크 랏 슬롯는 오늘날 프리미엄 미네랄 워터 시장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부르고뉴 지질이 만든 미네랄 구조
아리스 토크 랏 슬롯의 가장 큰 특징은 석회암 기반 지질에서 솟아나는 광천수라는 점이다. 부르고뉴와 그 인접한 지역은 중생대 석회암 지층이 넓게 분포해 있으며, 이 지층을 통과하는 물은 자연스럽게 칼슘과 마그네슘 등 다양한 미네랄을 흡수한다. 이러한 지질 구조는 부르고뉴 와인에서 흔히 이야기되는 ‘미네랄리티(Minerality)’와도 흥미로운 연결점을 만들어 낸다.
아리스 토크 랏 슬롯의 주요 수질 특성을 보면, TDS는 2420mg/L, 경도는 1539mg/L로 매우 높은 편이며, 칼슘(510 mg/L), 마그네슘(66mg/L), 중탄산염(322mg/L), 황산염(1,400mg/L)을 함유한 매우 강한 미네랄 구조의 광천수로, pH는 7.5로 약알칼리성을 띤다. 유럽에서도 드물게 나타나는 고미네랄(High Mineral) 광천수에 속한다. 그러나 실제 시음에서는 강한 자극보다는 부드러운 질감으로 시작해 시간이 지날수록 미네랄 구조가 서서히 드러나는 특징을 보이는 것이 매력적이다.
부르고뉴 떼루아가 미식의 품격을 높여주는 물
아리스 토크 랏 슬롯과 레스토랑에서 벨르맹프로이 먹는샘물은 프랑스 부르고뉴-프랑슈콩테 지역을 대표하는 천연 미네랄 워터로 소개할 수 있다. 물속에 함유된 칼슘, 마그네슘, 중탄산염, 황산염이 풍부해서 소화 기능 보조, 변비, 다이어트, 운동 전후 등에 좋은 물로 소개하면 좋다. 미네랄이 풍부하고 구조감이 있는 물이기 때문에 프랑스 비프스테이크, 부르고뉴식 달팽이 요리, 숙성 치즈, 해산물 요리 등을 추천하면 좋다. 특히 와인을 곁들인 식사라면, 와인의 풍미를 높여주고 음식의 품격을 한층 끌어올린다. 어쩌면 한 잔의 와인 뒤에 이어지는 한 모금의 물이야말로 진정한 미식의 균형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