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튼 슬롯 조작
힐튼 부다페스트

드뷔시는 화음을 해체했고, 리스트는 화음을 증폭시켰다. 전자가 파리의 안개처럼 경계를 지우는 방식으로 음악을 썼다면, 후자는 부다페스트의 다뉴브강처럼 경계를 확장해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두 슬롯 조작는 그렇게 서로 다른 음악을 품고 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여행자를 안내한다.

혁명, 수출되고 건축돼

파리와 부다페스트는 19세기 유럽 역사의 두 개의 진원지다. 하나는 혁명을 수출한 슬롯 조작이고, 다른 하나는 그 혁명의 불씨를 받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되살린 슬롯 조작다. 1789년 파리가 혁명의 거개를 열어젖혔을 때, 유럽의 구체제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진동이 다뉴브강을 타고 헝가리까지 흘러왔고, 1848년 부다페스트는 헝가리 독립운동가 페퇴피 샨도르의 시 한 편으로 광장에 나섰다. 그 뜨거움이 어떤 결실을 맺었든 간에, 중요한 것은 이 슬롯 조작가 그 열망을 건물로, 다리로, 성곽으로 변환했다는 사실이다. 1867년 합스부르크 체제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성립된 이후, 부다페스트는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슬롯 조작 중 하나가 됐다. 그 에너지가 어부의 요새 성벽에, 어시장 홀의 철골 구조물에, 세체니 다리의 우아한 아치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파리는 권력이 조각한 슬롯 조작이고, 부다페스트는 열망이 빚어낸 슬롯 조작다. 전자가 드뷔시의 전주곡집처럼 절제된 아름다움이라면, 후자는 리스트의 헝가리 초절기교연습곡처럼 과잉의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두 슬롯 조작 모두 당신을 압도한다. 방법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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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얏트 리젠시 파리 에투알

노을이 에펠탑에 걸리는 순간, 하얏트 리젠시 파리 에투알

하얏트 리젠시 파리 에투알은 개선문 너머, 라데팡스를 향하는 역사적 권력의 축 위에 서 있다. 파리의 도시 문법을 알면 이 위치가 얼마나 계산된 것인지 바로 이해가 된다. 루브르에서 시작해 튈르리 정원, 콩코드 광장, 샹젤리제 거리, 개선문, 그리고 라데팡스의 그랑드아르슈까지. 나폴레옹이 구상하고 오스만이 완성한 이 직선은 파리 권력의 해부도다. 호텔은 그 해부도의 정확한 지점에 놓여 있다. 이것은 입지가 아니라 선언이다.

현대 건축의 언어로 지어진 이 슬롯 조작의 외관은 처음에는 다소 낯설다. 오스만 양식의 석회암 건물들이 늘어선 파리에서 커튼월 유리 외벽은 이질적이다. 그것도 최근에 건축됐는데 말이다. 하지만 해 질 무렵이 되면 그 이질감이 오히려 의미를 획득한다. 유리 외벽이 서쪽 하늘을 고스란히 반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에펠탑에 노을이 걸리는 순간, 슬롯 조작 외벽은 그 노을을 복제하고 증폭시킨다. 이것은 인상주의가 아니다. 모네로 대표되는 인상주의는 대상을 해석하지만, 이 슬롯 조작은 대상을 흡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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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을이 연주되는 풍경

고층 객실에서 바라보는 파리의 저녁은, 글로 쓰면 진부해지는 광경이다. 에펠탑이 보인다. 노을이 에펠탑에 걸린다. 그렇다. 이미 수백만 장의 사진이 있고, 수천 편의 여행기가 있다. 이런 진부함을 극복하는 방법은 직접 보는 거다. 왜냐하면 그 노을이 매일 다르기 때문이다. 드뷔시가 같은 악보를 매번 다르게 연주하는 것처럼.

‘달빛’이라는 피아노 소품은 악보 위에서는 동일하지만, 누가 어느 피아노로 언제 연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악이 된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알프레드 브렌델, 손열음이 치는 달빛이 같을 수 없다. 에펠탑에 걸리는 노을도 그렇다. 당신이 어느 각도에서, 얼마나 지쳐 있는 상태로, 무슨 책을 무릎에 올려두고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광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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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 인테리어는 절제돼 있다. 파리의 다른 팰리스 급 호텔들이 루이 16세 양식의 가구와 금박 몰딩으로 역사를 흉내 낸다면 하얏트 리젠시 파리 에투알은 그 반대다. 현대적인 선, 중성적인 색채, 불필요한 장식의 배제. 이것은 르 코르뷔지에가 꿈꾸던 기계 미학의 온화한 버전이다. 가구가 물러서 있기 때문에 창밖이 앞으로 나온다. 결국 이 호텔의 진짜 인테리어는 에펠탑이고, 진짜 조명은 파리의 하늘이다.

조식당에서 카페오레를 마시며 생각한다. 플로베르는 파리를 사랑하면서도 파리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했다. 그는 노르망디의 크루아세에서 파리를 그리워했고, 파리에 있을 때는 파리를 온전히 바라보고 싶어했다. 이것이 파리의 매력이다. 안에 있어도 밖에서 보고 싶고, 밖에 있으면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하얏트 리젠시 파리 에투알의 고층 객실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제공한다. 당신은 파리 안에 있으면서, 파리를 바깥에서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 이것이 이 호텔이 파는 가장 비싼 것이다.

어부의 요새가 보이는 방, 힐튼 부다페스트

힐튼 부다페스트는 담대한 위치에 서 있다. 캐슬힐에 위치한 부다 왕궁 언덕 위, 1976년에 2차 세계대전 당시 파손된 제수이트 수도원 자리에 지어진 현대식 호텔이다. 중세 유적 한가운데에 콘크리트와 유리로 지어진 건물은 유럽에서 가장 대담한 건축적 결정 중 하나였다. 수도원의 잔존 벽체를 호텔 외벽에 통합하는 방식으로 이 도전을 풀어낸 힐튼 부다페스트는 중세와 현대가 문자 그대로 하나의 벽 안에 공존하는 건물이 됐다. 부다페스트라는 도시가 하고 싶었던 말을 이 호텔이 건축으로 먼저 해버린 셈이다. 시간은 층층이 적층되는 것이지, 적출되는 것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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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에서 올려다보이는 어부의 요새(Halászbástya)는 이 슬롯 조작에서 가장 극적인 광경이다. 1920년 경 지어진 이 신로마네스크 양식의 테라스는, 사실 어부들이 이 구역의 성벽을 지켰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지만, 실제로는 처음부터 이 슬롯 조작의 아름다움을 전시하기 위해 설계된 구조물이다. 다뉴브강을 향해 일곱 개의 흰 탑이 솟아오르는 이 광경은, 리스트가 헝가리 광시곡 2번에서 구사한 그 과잉의 아름다움, 절제를 거부하고 감정의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그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리스트는 헝가리인이었다. 그래서 공항 이름도 리스트 공항이다. 이 나라는 음악에서도, 건축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아름답다.

- 중세의 돌과 현대의 유리 사이에서

힐튼 부다페스트의 객실은 두 종류의 시간을 동시에 보여준다. 창밖으로는 13세기 마차시 성당의 첨탑이 보이고, 창 안쪽에는 현대적 인테리어가 있다. 이 조합이 처음에는 낯설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 공존이 부다페스트라는 도시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부다페스트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목욕탕이 남아 있는 도시에 합스부르크 양식의 오페라하우스가 서 있고, 그 사이를 현대의 트램이 달린다. 이 도시는 층위가 너무 많아서 하나의 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이 이 도시의 결핍이 아니라, 이 도시의 풍요다.

도나우강이 보이는 객실에서 밤을 보내면, 세체니 다리의 야경이 강물 위에 내려앉는다. 1849년에 완공된 이 다리는 헝가리 최초의 영구 교량이다. 이후 이 다리는 두 번의 역사적 격랑을 견디고 다시 세워졌다. 강을 바라보는 것은 그래서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어떤 것들은 무너져도 다시 선다는 사실을, 강물이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현대의 절제와 근대의 과잉
두 슬롯 조작이 읽히는 방식

하얏트 리젠시 파리 에투알과 힐튼 부다페스트는 건축적으로 정반대다. 전자는 현대 건축의 언어, 즉 기능과 선의 미학으로 지어졌고, 후자는 역사적 맥락 위에 올라탄 근대식 건물이다. 전자가 드뷔시의 영상이라면, 후자는 리스트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대연습곡이다. 리스트는 슈베르트(백조의 노래), 베토벤(합창 교향곡), 파가니니(라 캄파넬라)를 응축시켜 수많은 명작을 풀어냈다. 드뷔시가 소리와 소리 사이의 공간, 즉 침묵을 음악으로 만들었다면, 리스트는 침묵을 허용하지 않는다. 모든 빈틈을 음표로 채운다. 힐튼 부다페스트 역시 그렇다. 빈틈이 없다. 어느 창문을 열어도 역사가 쏟아져 들어온다.

두 호텔에서 읽기 좋은 책의 방향도 다르다. 파리 에투알에서는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소설을 권한다. 모디아노는 파리의 거리를 미로처럼 탐색하는 작가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항상 자신이 누구인지 더듬으며 나아간다. 기억이 불확실하고, 정체성이 흐릿하다. 이 불확실함이 파리라는 도시와 완벽하게 어울린다. 파리는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아름다운 도시다. 힐튼 부다페스트에서는 마그다 사보의 『아가씨』를 권한다. 헝가리 현대문학의 걸작 중 하나로, 두 여성 사이의 계급과 기억과 감정을 다룬다. 부다페스트라는 도시가 가진 그 복잡한 층위, 귀족과 열망과 재건의 역사가 이 소설 안에 압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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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를 구분하는 가장 간명한 방법이 있다. 파리는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있고, 부다페스트는 자신이 아름답다는 것을 온 도시가 함께 증명하려 한다. 이 차이가 두 도시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슬롯 조작도, 건축도, 음식도, 사람도, 음악도.

없음이 있고, 있음이 없다

한 가지 기억이 있다. 유럽 여행 중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모든 것이 악화돼 파리 북역에 머물던 기간이 있었다. 당시는 올림픽 기간이라 숙소 요금이 미친 듯이 비쌌고 그래서 악명 높은 치안으로 유명한 파리 북역 인근 숙소에 머물렀다. 밤에 올 때마다 흑인 갱스터들과 기싸움을 해야 했고, 에어컨은 없었으며 벌레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렇게 지친 마지막 날, 마지막만큼은 좋은 기억을 갖고 싶어 하얏트 리젠시 파리 에투알 기본 룸을 예약했는데 당시 받았던 환대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언제나 스펙터클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화려한 슬롯 조작의 야경도, 역사가 켜켜이 쌓인 성곽도 아니었다. 어떤 지친 저녁, 이메일을 받고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이 먼 곳에서 온 낯선 청년에게 따뜻한 차와 에펠탑이 잘 보이는 최상층을 준비해 주던 매니저의 태도는 서비스가 아니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조용한 형태의 환대였다. 올림픽의 불꽃은 꺼졌고, 광장을 수놓던 오브제들은 철거됐고, 그 여름 파리의 모든 화려함은 기억의 뒤편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 매니저의 온기는 아직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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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지 않는 것들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남는다. 거창한 역사의 페이지가 아니라, 누군가 당신을 향해 열어준 작은 문 하나로. 그리고 어쩌면 여행이란, 그 문을 찾아 떠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에펠탑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그 탑 앞에서 나를 알아봐줄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것. 우리는 풍경을 기억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 풍경 속에서 만난 사람의 온도를 기억한다. 그것이 인간이 고독하면서도 끝내 길을 나서는 이유다.